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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추억속의 과자 `뽀빠이`를 아시나요??

나들이를 자제시키려는 하늘의 꾸지람일까?
 주말오후 예보되었던 장맛비가 흩뿌려대며 애간장을 태운다.
 호우주의보까지 발호될 것이라는 허풍(?)에 풀 뽑으려 다락골에 가기로 했던 나들이계획을
다음 주로 미뤘지만 예보만 믿고  눌러 앉은 게 한편으론 후회가 된다.
 끈적끈적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모처럼 당구장에 들렸다가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에
근처 술집으로 자릴 옮겼다.
 침침한 분위기의 그곳에선 70년대를 풍미했던 유행가 가락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검정교복에 모자를 눌러쓴 심부름하는 이들까지 하나같이 정겨운 모습들이다.
 "추억의 과자"라며 건네준 작은 쟁반엔 뽀빠이, 라면땅, 자야, 비가, 아메사탕 등 70년대
에 유행했던 과자들이 한 봉지씩 담겨있다.
 하나씩 챙겨들고 저마다 가물가물한 그 때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한바탕 왁자지껄했다.
 팍팍하기만 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뽀빠이“에 대한 남다른 추억에 잠겨 빈 바지주머니만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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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에서 읍내 중학교까진 왕복30리길이었다.
조붓한 산길에 이어진 흙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를 따라 날마다 세 시간 이상씩을 걸어 다녔다. 지각이라도 하면  큰일날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걸어가다 뛰다를  반복하던 등굣길에 비해 하굣길은 여유가 넘쳤다.
오후 늦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팍팍하고 헛헛했다.
달리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때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산비탈길옆에 심어진 무, 미영(목화의 어린열매), 고구마 등 날로 먹을 수 있던 것들을 서리하려 남의 밭두렁을 타고 넘어가는 일은 예사였고 어린칡넝쿨, 찔레나무순, 아카시 꽃, 오디, 산딸기는 물론 뱀딸기에 머루, 생밤까지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를 찾아 산속을 싸다니다가 고린내 풀풀 나는 발도 씻지 않은 채 책장 한 장 넘겨보지 않고 저녁밥을 먹자마자 쓰러져 잠자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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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답 대여섯 마직이 부치는 빠듯한 시골살림에 용돈을 받아쓴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새해 설날에 받은 세뱃돈도 학용품 살 때 보태야 된다며 고스란히 차압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보리밥이라도 굶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는 게 감지덕지할 판이었다.
그 당시에도 쌀밥 먹는 집과 보리밥 먹는 집과의 구별은 뚜렷했었다.
과자를 처먹는 엘리트 교복을 입은 잘사는 집 아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 입안에서 샘솟는 침만 꿀꺽 삼키며 혹시 과자부스러기 하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 넋 놓고 쳐다만 봤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 중간 중간엔 두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마을마다 담배와 간단한 생활용품을 파는 점방이 길옆에 위치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진열대의 가장 좋은 자리는 라면면발을 기름에 튀겨낸 과자 "라면땅"과"뽀빠이"의 차지였다.
인기절정의 만화주인공"아톰"모습을 포장지에 그려 넣은 "라면땅"은 면발이 가늘고 기름에 바싹 튀겨내 상대적으로 고소한 맛이 강했고 큰 코에 우람한 근육질몸매를 가진 해군아저씨복장을 포장지에 새긴 "뽀빠이"는 상대적으로 면발이 두꺼워 씹히는 맛이 좋았다.
둘 다 다보탑이 새겨진 동전 한 닢이면 한 봉지씩을 사 먹을 수 있었다.
"미술시간 준비물을 사야한다".
"참고서를 사야한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거짓말로 고쟁이 속주머니에 꼭꼭 숨긴 땀 냄새 배인 지폐들을 우려내서 단골집 드나들듯 점방 문턱을 넘나들었다.
다른 과자는 거들떠보지 않고 오직“ 뽀빠이”만 손이 갔다.
뽀빠이"만을 고집했던 이유는 "라면땅"에 비해 오래 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십 원짜리 "뽀빠이"두 봉지면 하굣길 15리길이 지루한 새가 없었다.
봉지 채 잘게 으깬 과자부스러기들을 교복바지 한쪽 주머니에 털어 담고 한 조각씩 꺼내 입안으로 던져 넣은 후 잘근잘근 씹어가며 멀고도 힘든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어느 땐 과자부스러기 한개에 열 걸음, 어느 땐 스무 걸음 스스로 목표를 정해 걸음을 재촉했다.
중학교 3년 동안 나에게 "뽀빠이"는 팍팍한 15리길을 함께한 든든한 길동무이자 버팀목이었다.

출처 : 다락골사랑-누촌애
글쓴이 : 다락골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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