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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음악이 있는 시낭송

길 떠나는 소년/ 정호승



길 떠나는 소년/ 정호승


저녁해 지는 나주 남평역
역마당에 널린 붉은 고추에 해는 기울고
건들건들 완행열차가 숨을 멈춘다
물방개야 소금쟁이야 잘 있어라
지하철을 타고
날마다 하모니카를 불고 다닌다는
눈먼 아버지는 소식이 없고
답십리에서 파출부로 일한다는 엄마도 소식이 없어
개똥벌레야 왜가리야 잘 있어라
외할머니 몰래 나도 서울로 간다
저녁 열차에 가득 햇살을 싣고
길 떠나는 소년의
외로운 가을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