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沙平驛)에서
시. 곽재구님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시인은 54년 광주에서 나서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이 당선됩니다.
** 시속 '사평역'의 배경은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남평역' 입니다.
광주역에서 통일호로 40분 남짓 걸리는 거리지요.
그 길은 상상에서 현실을 찾아가는 길. 어쩌면 현실에서 상상을 찾는 여정일지도...
*
남평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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