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스테디셀러]'사평역에서' |
◇ 사평역에서/곽재구 지음/146쪽 5000원 창작과 비평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1년>
조그만 간이역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막차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부려둔 보따리나 꾸러미에 기대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웅크린 채 쿨럭이기도 한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사내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이 시의 등장 인물들은 들뜬 마음으로 혹은 큰 기대감과 설렘으로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삶에 따라 붙는 고달픔과 고단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안식과 위로를 얻으려 영혼의 쉼터인 고향을 찾는 것이다. 이런 점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 나오는 정씨와 비슷하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뒤 공사판을 떠돌던 정씨는 고향으로 가기 위해 삼포로 가는 길을 되밟는다. 고향으로의 여정은 그에게 방랑의 삶을 마감하는 길이고, 안식처를 찾아가는 길이다. 따라서 '사평역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삼포가는 길의 정씨는 다같이 고향을 정신의 쉼터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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