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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서

남평읍지


南平邑誌(奎17420), 南平縣(朝鮮)編. 1冊(7張) 筆寫本 30.1×21.4cm. 편년 미상의 전라도 南平邑誌이다. 「戶口」조의 내용으로 보아 正祖年間에 편찬된 읍지를 일제시대에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表題가 「南平郡邑誌」로 된 것은 전사시의 오류일 것이다. 내용은 建置沿革, 郡名, 官職, 坊里, 道路, 城池, 山川, 姓氏, 風俗, 學校, 書院, 壇廟, 公해, 關防, 烽燧, 堤堰, 場市, 橋梁, 驛院, 寺刹, 樓亭, 形勝, 物 産, 進貢, 上納, 戶口, 田摠, 田稅, 大同, 均稅, 俸름, ?役, 倉庫, 조적, 軍器, 軍額, 奴婢 순이다.「題詠」조가「樓亭」조에 포함되어 있으며 兪彦民, 李奭輔 등의 詩가 실 려 있다.

先生案, 名宦, 人物, 科擧, 忠臣, 孝子, 孝女, 烈女 등 인물에 관한 조항과 古蹟 등이 전혀 수록되지 않은 반면, 進貢, 上納, 田稅, ?役, 조적, 軍器, 軍額 등이 매우 상세하며 「奴婢」조가 독립된 점이 독특하다.

「上納」조의 경우 備邊司·訓鍊 都監·禁衛營·兵曹·戶曹 등 21개처에 대한 상납 수량이 표시되어 있다. 이밖에 ≪海 南邑誌≫<상백古 915.14-H118>에 附錄된 같은 내용을 지닌 本邑 읍지, 高宗연간에 작 성된 ≪湖南邑誌≫<奎12175> 제2책 및 ≪湖南邑誌≫<奎12181> 제9책 소재의 본읍 읍지 , 그리고 1899년의 ≪南平郡邑誌≫<奎10776>가 참고 된다. 全羅道南平縣內需司畓打量成冊(奎18474), 南平縣(朝鮮)編. 1冊(2張) 筆寫本 47.6×29cm. 1783년(正祖 7) 3월에 全羅道 南平縣 縣內面 소재 15筆地의 內需司畓을 同縣에서 打 量·作成한 量案이다. 각 필지마다 地番, 量田方向, 土地等級, 地形, 地目(畓), 長廣 尺, 結負數, 四標 등이 기재되어 있고 「量某(姓名)內需司」라고 표시되어 있다.

 

 起畓 1結 41負 1束이다. 남평향교 남평 향교는 세종 2년(1420)에 남평현 동문과 동사리에 세워졌다가 중종 29년(1534)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명종 원년(1546)에 중수하고 다시 임진왜란으로 불탔으나 선조 33년(1600)에 재건하였다.

그 후에도 수차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최근 1967년에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위치는 남평면 교촌리로 옛 남평현 남문 밖 1리 월연대 아래에 있다. 현 건물을 전체적으로 보면 전학후묘의 경사지건축으로 좌향 은 남향이며 대성전과 명륜당의 중심축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정면 3간 측면 1간, 맞배지붕의 외삼문이 있으며 이 를 지나 좌측에 멸륜당이 있고 명륜당 좌우에 있는 동·서제 는 좌우대칭의 축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각 건물을 보면 명 륜당은 정면 5간, 측면 2간으로 막돌 허튼층 쌓기의 낮은 기 단을 놓고 덤벙주초 위에 원주를 올려 놓았다.

평면은 좌우 퇴간을 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전체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 다. 홑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북향의 전면은 개방되어진 상태 로 출입하고 있다. 동제는 4간으로 2간은 방, 2간은 누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서제 역시 4간으로 측면 1간은 모두 방이며 전퇴는 우물마루 이다. 대성전은 정면 5간, 측면 2간반으로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 단위에 정평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원주를 세 웠다. 기둥 위에는 이익공 주두, 그리고 소루와 담차의 짜임 을 볼 수 있고,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박공면에 풍판을 달 았다. 전면은 조그마한 이분합 띠살문이 3개 있고 나머지는 모두 회벽바름으로 마감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5성과 송조 4 현 그리고 우리나라의 18현 등 합 27위패를 봉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