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삿갓 1004 2008. 12. 30. 02:18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남평향교는 세종 9년(1427)에 동문 밖에 세웠으며, 중종 29년(1534)에 남일리 자고개로 옮겨 인종 1년(1545)에 수리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3년(1600)에 성균관과 남평 현민들이 협조하여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외삼문·내삼문 등이 있다.

경사지에 위치한 남평향교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배움의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뒤쪽의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이 향교는 조선(朝鮮) 세종(世宗) 9년(1427)에 창건(創建)되었다 하며 남평현(南平縣) 동문(東門) 밖(현 남평면(南平面) 동사리(東舍里))에 있었다 한다. 중종(中宗) 29년(1534) 현 위치로 이건(移建)하였으나 정유재란(丁酉再亂)(1597) 때 소실(燒失)되어 선조(宣祖) 33년(1600) 중건(重建)하였고 숙종(肅宗) 21년(1695), 영조(英祖) 21년(1745), 정조(正祖) 17년(1793), 헌종(憲宗) 원년(1835), 철종(哲宗) 6년(1855), 1921년에 각각 중수(重修)가 있었다. 건물은 경사지(傾斜地)에 일반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配置形式)을 따르고 있어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명륜당(明倫堂)과 동(東)·서재(西齋)가 있고, 내삼문(內三門) 내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동(東)·서무(西무)가 있고 제기고(祭器庫), 고사(庫舍) 등이 있다. 문묘(文廟) 내에는 5성(五聖)과 송조4현(宋朝四賢) 및 우리나라 18현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여 향사(享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