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서

남평역 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서

방랑시인삿갓 1004 2008. 7. 2. 14:53

소중한문화유산을 찾아서   전남 나주 남평역

건물연혁 : (창건, 이전(이축), 증축, 수리, 부분철거, 폐쇄(예정, 완료), 무인화, 폐선)

   - 1930. 12. 25.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영업개시

   - 1948. 5. 3. 보통역으로 승격

   - 1950. 2. 7. 여순반란 사건으로 역사소실

   - 1956. 7. 17. 역사신축 준공

   - 1978. 7. 1. 홈 대합실 철거

   - 2006.      대합실 교체

   - 2006.12.04 등록문화재로 지정 제 299호

 

역사적 가치: 경전선은 삼랑진∼마산 사이를 잇는 마산선(馬山線), 마산∼진주 사이를 잇는 진주선(晋州線), 송정리∼광주 사이를 잇는 광주선(光州線) 및 진주∼순천을 잇는 경전선 등이 합해진 철도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 철도라는 뜻에서 두 도의 첫 글자를 따서 경전선이라 하였다. 삼랑진∼마산 사이는 1905년 5월 26일, 마산∼진주 사이는 1923년 12월 1일, 송정리∼순천 간은 1922년 7월 1일, 진주∼순천 간은 1968년 2월 7일 각각 개통하여 삼랑진∼송정리 간이 완전히 개통하였다.2000년 8월 10일 효천~송정리 구간의 철도를 이설하여 서광주역이 새로 생기고 효천~남광주~광주 구간이 폐선되었다. 그리고 기존 동송정~극락강~광주 구간은 '광주선'이라고 불린다. 1930년12월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1948년 5월보통역으로 승격하여, 1950년 여순반란사건으로 역은 소실되어 1956년7월 역사가 신축되었다.

 

 전남 나주 남평에는 경전선(삼랑진-송정리) 남평역이 있는데, 바로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하겠다고 한 간이역 중의 하나다. 1930년에 준공한 남평역은 77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전쟁 때는 역사가 소실되는 등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광주와 화순을 잇는 중계역으로서 그 임무를 굳건히 수행해왔다. 특히 남평에서 광주로 학교를 다니는 통학생들의 다리 노릇을 하면서 지역 인재의 양성과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최근 남광주역이 없어지면서 그 기능을 크게 상실, 간이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 아침저녁으로 순천과 목포를 잇는 무궁화호가 왕복 열 차례 다니기는 하지만 일일 승객이 평균 다섯 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하루 종일 타고 내리는 승객이 한 명도 없는 날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도 남평역이 세인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는 것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와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 때문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는 ‘사평역’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을 읊은 시이고, 소설 ‘사평역’은 시인과 동향의 작가인 임철우가 그 시를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두 작품 속에서 나오는 사평역이 바로 남평역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평역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신문·잡지 등에 간이역 기사가 나가는 경우 단골로 등장하기도 하고,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어떨 때는 승객보다 많은 수의 답사객이 다녀가기도 한다.

 

 

 

 

 

 

 

 

 

 

 

 

 

 

 

                                                    

 

 

 

 

 

 

전남 나주 남평역


1. 선,역명 : 경전선 남평역

2. 용도 : (현)  보통역 / (원) 보통역

3. 소재지 :  전남 나주시 남평읍 광촌리 470

4. 관리부서 :  (지역본부) 광주지사

5. 건립년도 :  1956년 7월 17일

6. 규    모

ㅇ 건축면적 : 87㎡

ㅇ 높이 등 기타 : 박공지붕, 단층.

7. 구조․양식 및 특징

ㅇ 구조 : 벽돌조

ㅇ 양식 : 근대양식

ㅇ 특징 : 6.25 이후 지어진 다른 역사와 같이 벽돌조 단층으로 지어졌다. 이 당시 지어진 다른 역사들의 보통 형태는 중심에 박공을 두고 양측에 맞배지붕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규모가 조금 작은 역은 남평역처럼 한쪽에 박공을 올리고 맞배지붕을 한 형태가 된다.

8. 경관적 가치

ㅇ 경관, 풍치 : 역을 중심으로 한 경관과 풍치는 매우 양호하다. 우선 역 주변의 경치는 산과 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역 광장 역시 한가로이 넓다. 역이 남평읍으로부터 떨어져 잇고 역주변이 인가가 별로 없는 점도 정치를 더해 주고 있다. 승강장 쪽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역 앞에 분재를 잘 키워서 고객들로 하여금 한껏 정서를 느끼게 하였고 그 주위에 수목들이 잘 우거져 있다.

ㅇ 주요시설 : (산업, 관광, 연계시설)

   - 주변에 특별한 시설은 없다.

ㅇ 서정적 조건 : 대합실에서 나와 승강장으로 이르는 길은 다른 역에서 보듯이 바로 직선적으로 나 잇는 것이 아니고 약간의 오솔길을 걷는 듯이 휘어져 있다. 여기에 아치를 만들어 여객들이 그 밑을 지나가게 했다. 승강장에도 짙푸른 수목이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고 그 밑에 긴의자를 두어 앉아서 기차를 기다릴 수 있게 했다.

    승강장에서 남평역 건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물 앞에 잘 자란 수목이 서 있으며 나무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역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것들은 철로 건너편 짙푸른 야산과 휘어져 내달리는 철로와 더불어 시골역의 정겨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ㅇ 관리자(역장)의 의견 :

   - 미리 공문을 통해 연락을 취하고 방문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9. 연혁․현황

건물연혁 : (창건, 이전(이축), 증축, 수리, 부분철거, 폐쇄(예정, 완료), 무인화, 폐선)

   - 1930. 12. 25.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영업개시

   - 1948. 5. 3. 보통역으로 승격

   - 1950. 2. 7. 여순반란 사건으로 역사소실

   - 1956. 7. 17. 역사신축 준공

   - 1978. 7. 1. 홈 대합실 철거

   - 2006.      대합실 교체

ㅇ 현황 :

   - 입지현황 : 남평역은 나주시 남평읍의 북동쪽 광촌리 영산강의 지류인 동천에 인접해 있다. 국도 1호선이 부근을 지나며 여기에서 지방도를 따라 화순방향으로 10분정도의 거리에 있다. 남포읍은 나주시와 광주광역시의 중간에 놓여 도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역사가 위치한 지역은 남평읍으로부터 꾀 떨어져 있어서 주민들의 이용이 저조하다.

   - 건물현황 : 남평역은 광장 쪽의 입면이 비교적 단순하여 건물의 후면이고 철로 쪽이 전면임을 보이고 있다. 후면은 대합실이 있는 박공면 아래에 캐노피가 덧대어 있고 좌측으로 창문들이 나 있다. 창문은 초기에는 목제창호였으니 현재는 바뀌어 알미늄 섀시이다. 박공부분의 처마에는 목조 부재가 노출되어 나타나고 있고 지붕구조가 목구조임을 보이고 있다. 캐노피를 받히고 있는 가새는 마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도 초기에는 목제였을 것이다. 캐노피를 뚫고 홈통이 나와 꺽이어 벽쪽으로 흐른다. 캐노피의 천장은 목재 널을 대었다.

     건물의 정면으로 돌아가 보면 비교적 다양한 건축형태를 이룬다. 대합실 위의 박공지붕과 건물의 장방향에 따르는 교차하는 박공, 역무실 앞부분의 돌출공간을 덧씌우고 있는 지붕, 그리고 대합실 앞의 길다란 캐노피가 형태구성을 해 준다. 더욱이 오른편에 덧댄 공간은 지붕구성을 더욱 다양하게 해준다. 이 부분은 나중에 증축한 패널공법의 구조이다. 캐노피를 받히는 기둥은 천정 부분에서 가새를 대어 힘을 받게 했고 처마의 빗물받이와 홈통이 다른 목조역에서 볼 수 있는 형태와 유사하다. 캐노피의 천장에 노후한 부분이 발견된다. 보수가 필요하다. 캐노피천장은 판자대기이다.

     다만 남평역은 역무실 돌출 부분의 지붕이 맞배가 아니라 모임지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히 이례적인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지붕재는 주름 함석이다. 다만 증축부분은 패널형 지붕재이다.

   - 이용현황 : 여객은 하루 5-6인이 이용하며 주로 노인들이다. 광주 시내로 연결해 주는 남광주 역이 없어지면서 여객이 더욱 줄었다. 목포, 순천을 오가는 화물열차가 많다. 주로 석탄을 수송.

     최근에 영화촬영, 드라마촬영이 있었다.

ㅇ 전망 : 특별한 계획이 없다.

10. 조사자 의견

<김란기 : 근대분과 전문위원, 강찬석 : 제도분과 전문위원>

ㅇ 경관과 풍치가 매우 수려하다. 지붕부분에 약간의 노후 부분이 발견되었을 뿐 아직 건실하다. 여순반란 사건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의 상당수 역들이 당시에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로 등록시키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이 아름다운 역을 사랑하고 많이 찾아오게 하는 일이다. 기존의 역사로 활용하면서 기차여행의 목적이 아니라도 국민들이 찾아와 쉬고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병하 : 근대분과 전문위원>

역사적 가치: 경전선은 삼랑진∼마산 사이를 잇는 마산선(馬山線), 마산∼진주 사이를 잇는 진주선(晋州線), 송정리∼광주 사이를 잇는 광주선(光州線) 및 진주∼순천을 잇는 경전선 등이 합해진 철도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 철도라는 뜻에서 두 도의 첫 글자를 따서 경전선이라 하였다. 삼랑진∼마산 사이는 1905년 5월 26일, 마산∼진주 사이는 1923년 12월 1일, 송정리∼순천 간은 1922년 7월 1일, 진주∼순천 간은 1968년 2월 7일 각각 개통하여 삼랑진∼송정리 간이 완전히 개통하였다.2000년 8월 10일 효천~송정리 구간의 철도를 이설하여 서광주역이 새로 생기고 효천~남광주~광주 구간이 폐선되었다. 그리고 기존 동송정~극락강~광주 구간은 '광주선'이라고 불린다. 1930년12월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1948년 5월보통역으로 승격하여, 1950년 여순반란사건으로 역은 소실되어 1956년7월 역사가 신축되었다.

건축적 가치: 남평역은 광장 쪽의 입면이 비교적 단순하여 건물의 후면이고 철로 쪽이 전면임을 보이고 있다. 남평역은 역무실 돌출 부분의 지붕이 맞배가 아니라 모임지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히 이례적인 형태이다. 지붕재는 주름 함석이지만 증축부분은 패널형 지붕재이다. 철로변의 대합실이 있는 박공면 아래에 캐노피을 덧대어 있고 좌측으로 창문들이 나 있다. 창문은 초기에는 목제창호였으니 현재는 바뀌어 알미늄 섀시이다.  철로변의 입면은 비교적 다양한 건축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대합실 위의 박공지붕과 건물의 장방향과 교차하는 박공, 역무실 앞부분의 돌출공간을 덧씌우고 있는 지붕, 그리고 대합실 앞의 길다란 차양지붕이 형태구성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차양지붕을 받히는 기둥은 천정 부분에서 가새를 대어 힘을 받게 했고 처마의 빗물받이와 홈통이 다른 목조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형태와 유사하다. 전라남도 지역에서 근대기의 역사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등록가치는 춘분하다고 판단된다.

등록범위: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인정되며 역사만이라도 보존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전남 나주 남평에는 경전선(삼랑진-송정리) 남평역이 있는데, 바로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하겠다고 한 간이역 중의 하나다. 1930년에 준공한 남평역은 77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전쟁 때는 역사가 소실되는 등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광주와 화순을 잇는 중계역으로서 그 임무를 굳건히 수행해왔다. 특히 남평에서 광주로 학교를 다니는 통학생들의 다리 노릇을 하면서 지역 인재의 양성과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최근 남광주역이 없어지면서 그 기능을 크게 상실, 간이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 아침저녁으로 순천과 목포를 잇는 무궁화호가 왕복 열 차례 다니기는 하지만 일일 승객이 평균 다섯 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하루 종일 타고 내리는 승객이 한 명도 없는 날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도 남평역이 세인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는 것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와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 때문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는 ‘사평역’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을 읊은 시이고, 소설 ‘사평역’은 시인과 동향의 작가인 임철우가 그 시를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두 작품 속에서 나오는 사평역이 바로 남평역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평역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신문·잡지 등에 간이역 기사가 나가는 경우 단골로 등장하기도 하고,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어떨 때는 승객보다 많은 수의 답사객이 다녀가기도 한다.

남평역 다음 역인 앵남역은 더욱 애틋하다. 앵남역은 한때 소위 ‘을종대매소’로서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사설발권역으로 역사건물도 없는, 마치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대기소와 팻말 그리고 건널목으로 이루어진 노천역으로 그야말로 진짜 간이역 같은 간이역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나마 손님이 끊기면서 지난해 11월부터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앵남역은 멸종해가는 간이역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인 셈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몹시도 버거운 날엔/앵남역에 가보라//앵두꽃 눈물처럼/망울져 흔들리는 봄날/남평에서 화순 가는 중간쯤/이 땅의 기차역 족보에 엄연히 올라 있는/앵남역에 앉아/기차를 기다려보라//더러는 떠나고 더러는 돌아오는/철벽바위로 단단하던 일상도/알고 보면 우스운 일//역장도 매표원도 없어/우리가 행선지를 깜빡/잊은들 대수리//잊은 김에 뜨겁던 그 여름도 잊고/잊은 김에 뜨겁던 그 겨울도 잊고/꿈결인양 구부러지는 산모퉁이를/탕아처럼 휙휙 지날 때쯤이면//다아 잊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잊어버리고//앵두꽃 가지 사이로/괜시리 봄비 뿌려대는/그런 날이면/혼자서라도 앵남역에 가보라 -박혜옥 ‘앵남역’ 전문

하지만 이제 앵남역에 기차는 서지 않는다. 앵남역 가까이에는 도곡온천이 있고, 능주에는 조광조적려유허지가 있다. 화순의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