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향의 역사사진으로

문화재자료 제92호(전남) 죽림사극락보전(竹林寺極樂寶殿)

문화재자료 제92호(전남) 죽림사극락보전(竹林寺極樂寶殿) 문화재자료

2008/01/25 21:30

 

 

 

죽림사는 백제 비유왕 24년(440)경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발견된 사리와 청동불두로 보아 통일신라 이전이나 같은 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은 극락보전, 영산전, 청향각, 삼성전 등이 있다.

극락보전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이며,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죽림사는 백제 비유왕 24년(440) 경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그러나 통일신라때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 16과(顆)와 청동불두가 발견되어 통일신라 이전이나 같은 시대로 추정된다.

죽림사기(竹林寺記)를 쓴 이곡산인(苔谷散人)은 사찰 기록의 부록에 창건시의 규모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7전(殿), 3당(堂), 2실(室), 3요(寮), 6암(庵), 1사(寺)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극락보전, 영산전, 청향각, 삼성전 등이 있다.

사찰의 배치는 보통 탑의 수에 따라 1탑식, 2탑식, 무탑식으로 분류될 수 있고, 위치에 따라 산지형, 평지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죽림사는 남평 중봉산의 중턱에 위치한 산지 무탑식가람으로 원래의 배치형식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지형의 경사도와 대지의 조건으로 보아서는 선을 중요시하면서 발생한 산지가람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보통 산지가람의 배치형식인 경외→ 일주문→ 누(樓)→ 중정(中庭)→ 대웅전과 요사→ 부속 당우(堂宇)의 순서로 이루어진 3단(상, 중, 하단)의 단차 구성이 아니라 경외에서 바로 요사인 청향각(淸香閣)에 이르게 하였고 그 다음 공터를 두고 단위에 극락보전과 영산전, 삼성각이 한꺼번에 배치된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전후퇴이며 맞배지붕에 곁처마를 한 건물이다. 2.2m높이의 막돌쌓기 기단위에 건축하였는데 초석은 덤벙주초로 2고주(高柱) 5량의 맞배지붕에 풍판(風板)이 설치된 건물이다. 공포는 외1출목(外一出目)의 주심포식으로 내부에 출목이 없고 기둥 위의 공포사이에 소루(小累)로 꾸며진 커다란 화반이 있으며 기둥은 배흘림을 약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부공간은 실내에 기둥이 없이 통칸으로 처리하여 개방감을 준다. 천정은 층단을 둔 우물천장이며 불단위에 보개를 얹었다. 특이한 것은 불단을 정면이 아닌 측면에 배치하였다는 점이다. 개구부의 문은 모두다 띠살창인데 정면과 우측면에 출입문이 있을 뿐 아니라 배면에도 문이 있는 것은 독특한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대지가 좁고 단차가 심한 곳에 위치하여 국이 적은 편이나 아담하고 가구구조가 간결한 건물이다. 현재는 극락보전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