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묵객 즐겨찾던 ‘탁사정’
청산녹수의 맑은 산수가 좌우로 펼쳐졌다. 물고기 뛰노는 맑은 경관이 길손들의 정신을 빼앗는다. 송림이 울창한 곳에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윤선기가 지은 단층 팔각
골기와 건물로 대청형의 탁사정이다. 경승에 반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드들강 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은 정자에 올라 즐겨 논다고 한다.
강과 정자하면 나주출신의 나덕명이 떠오른다. 그는 임진왜란 시에 함경도 변방으로 피난 간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을 적지에서 구출해낸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평정되고 난 다음 높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지만 정자를 짓고 시를 쓰며 자적했다. 순수한 자연을 찬탄한 그의 시가 드들강과 잘 어울린다.
강정즉사(江亭卽事) 강가 정자에서
풍정강미초(風靜江湄草) 바람 자니 강가 풀 조용 해 지고
어경월하파(魚耕月下波) 고기는 달 아래 물결을 가르도다.
야한수불매(夜寒愁不寐) 밤이 추워 근심에 잠 못 이루는데
연외기어가(烟外起漁歌) 안개너머에서 어부의 노래 소리 들리네.
남평에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석등이 있어서 지나온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 석등은 남평초등학교 교정에 있는데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남평 관아의 객사인 영평관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동사(東舍)리라는 지명도 동헌의 동쪽에 객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림이 울창한 곳에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윤선기가 지은 단층 팔각 골기와 건물로 대청형의 탁사정이다
경승에 반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하천 기능을 되살리고 친환경적인 자연 공원으로 가꿔야할 것이다. 자연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그것을 복원하기란 몇 십배 몇 백배의 노력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나마 차일피일 미루고 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드들강변의 하얀 모래둔덕이 아직은 살아 숨쉬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모래 뒤쪽의 푸른 솔밭이 물빛과 함께 초록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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